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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배한 계기가 된 사건맛난고의 정보 2022. 4. 17. 16:55반응형
바로 1827년 4월 29일에 있었던 부채 사건
(حادثة المروحة)
우선 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선 당시
프랑스와 알제리(오스만의 지배를 받고
있었음) 사이에 존재하던 빚에 대해
알아야 한다.
시간을 조금 거슬러 1798년, 당시의 프랑스
는 혁명이 번지어 왕정이 붕괴되는 것을
우려한 유럽 국가들에 의해 고립되어
있었다. 주변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벌이던 프랑스로선 물자의 공급이
절실하였으나 프랑스를 경계하던 주변국
에서 수입할 수 있을리는 만무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두명의 유대인
상인(코헨 알 바크리, 보스나크)을 만나
알제리에서 물자를 수입해오는 약속을
한 것이었다.
양국간의 무역은 순조로웠으며 1803년부터
1815년까지 알제리는 프랑스에 밀을
포함한 물자를 공급했다.
이런 이유로 1827년 시점에 프랑스는
알제리에 2800만 프랑(약 2억6,200만 유로)
에 달하는 부채를 지고 있었다. 19세기로서
는 엄청난 수치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1827년 4월 29일,
프랑스 영사 피에르 뒤발은 알제리 총독
오스만 파샤 다이 후세인의 궁전을
방문한다.
이 자리에서 후세인 총독은 뒤발에게
프랑스가 진 빚을 갚을 것을 요구하였는데,
그는 그것을 거절하였다. 화가 난 후세인은
뒤발에게 방에서 나갈 것을 명령하였지만
이 또한 듣지 않았다.
결국 분노한 후세인은 들고 있던 부채를
위협하듯 뒤발의 눈 앞에서 거칠게 휘둘러
불쾌했던 방문을 끝마치고 만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이 일을 국가와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인 뒤발은
본국에 "알제리 총독이 자신의 얼굴을
부채로 때렸다." 라고 과장되게 보고했다.
이에 분노한 프랑스 국왕 샤를 10세는
같은해 6월 12일, 명예회복을 구실로
프랑스 해군의 함대를 알제리로 파견했다.
후세인 총독은 이 '부채 사건' 에 대해
사죄할 것을 제안 받았지만 거절했다.
결국 6개월간의 포위 끝에 알제리는
점령되었고, 1962년에 독립전쟁으로
프랑스군이 축출될 때 까지 프랑스의
지배가 이어지기에 이른다.반응형
< +추가 댓글 >
유럽의 짱■새끼딱히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자해 폄하 박해였던가
히틀러 지옥에서 오열하겠다. 자긴 전쟁
에서 져서 세계 최악의 쓰레기로 남았는데
이 새끼들은 2차대전에서 이기고 거의
영웅급 대우를 받고 살았으니까
프랑스가 영국에 밀려서 부각이 안되지
외교 참 악랄하게 했음
아이티 빚으로 쪽쪽 빨아먹은것만 봐도
영프는 정말로 히틀러한테 머리박고
감사해야 한다니깐, 나치덕에 쟤네들
짱1개짓들 죄다 묻혔지.
유럽의 모든 죄악을 짊어지고 죽은 눈물을
마시는 새 히틀러
빚 안 갚을려고 핑계대서 전쟁한거네
빚을 갚기는 커녕 침략하다니
뿅뿅 금지하고 몰수했다고 침략한 나라도
있는데 뭘 ㅋㅋㅋㅋ그리고 나서 이 유럽짱■■놈들은 독일이
2차대전에서 항복하던 그날 독립을
요구하던 알제리 시위대에 총격으로
답하고
함포 폭격기를 동원한 전쟁으로 학살함
명불허전 유럽장궤새끼들
노린거지 뭐. 대사가 목 뻣뻣이 들고
버틴것도 제발 명분 하나만 줘라. 였을듯
사실 빚도 나중에 어차피 식민지화
시켜버리면 없어질테지 하고 일부러
쌓아둔거 아닐까 싶네'프랑스 첩보원 되기'
식민지 독립을 막으려고 삽질하는
냉전시대 프랑스 정보부 이야기.
넷플릭스에 있어요.반응형'맛난고의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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