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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최초 휴대용 디지털카메라 발명 비화와 코닥의 엇갈린 운명
    맛난고의 정보 2025. 12. 28. 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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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렌즈 달린 토스터’로 불린 세계 최초의 휴대용 디지털카메라가 탄생하기까지의 뒷이야기

    1975년, 이스트먼 코닥이라는 필름 회사에서 일하던 젊은 엔지니어가 처음으로 휴대용 디지털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 순간은 인류 사진사에 큰 변화를 가져온 계기가 됐습니다. 스티브 사슨이 코닥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코닥은 미국 산업의 창의성과 활기를 상징하는 기업이었습니다. 1870년대 조지 이스트먼이 회사를 세운 이후로, 코닥은 곧 필름 사진 그 자체와도 같은 존재였죠. 많은 사람들이 코닥 필름을 사서 코닥 카메라에 넣고, 코닥의 화학약품으로 사진을 인화해, 코닥 인화지에 담긴 추억을 감상하곤 했습니다. 19세기 말부터는 “셔터만 누르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다 하겠습니다”라는 짧은 슬로건마저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1973년, 23살이던 스티브 사슨이 입사해보니 그는 왠지 이곳과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필름을 연구하는 화학자도, 카메라 구조를 설계하는 기계 엔지니어도 아닌 전기공학자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그는 기존 사진 방식이 몹시 불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로 75세가 된 스티브 사슨은 인터뷰에서, 사진 수업에서 필름을 현상하고 화학약품을 다루는 과정이 정말 번거로웠다고 회상했습니다. ‘스타트렉’을 보며 자란 세대로서, 그는 모든 과정을 전자적으로 할 수 없을까 늘 고민했다고 합니다. 필름 없이 이미지를 전자적으로 캡처하고 저장하는 꿈을 꾸게 된 거죠.

     

     

     


    고장난 부품으로 만든 혁신의 시작


    필름 없는 카메라에 필요한 기본 기술은 이미 나와 있었습니다. 1969년 벨 연구소에서는 빛을 전기로 바꿔 저장하는 전하결합소자(CCD)를 개발했어요. 1974년에는 페어차일드 세미컨덕터가 100x100 픽셀 크기의 상업용 CCD를 선보이기도 했고요. 스티브 사슨은 상사였던 가레스 로이드로부터 ‘이 CCD라는 걸 한번 분석해보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곧 이 기술이 진짜 필름 없는 카메라의 핵심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그러다보니 기계 엔지니어들의 정교한 카메라와 달리, 움직이는 부품이 하나도 없는 카메라를 꼭 만들어내고 싶어졌다고 합니다.

    워낙 예산이 부족했던 터라, 사슨은 주변에 굴러다니는 고장난 부품들을 걷어모아 조립을 시작했습니다. 카메라 렌즈는 안 쓰던 영화 촬영 카메라에서 빼내 썼고,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바꿔주는 변환기는 당시 12달러짜리 디지털 전압계에서 분리해 썼습니다.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에는 평범한 오디오 카세트테이프를 사용했고요. 촬영한 이미지를 볼 수 있는 재생 장치까지 직접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수천 달러짜리 모토로라 마이크로프로세서가 필수였습니다. 연구에 꼭 쓴다고 주장해 겨우 허락을 받기도 했죠.

     

     

     


    23초의 기다림 끝에 등장한 첫 사진


    1975년 12월, 무게만 3.6kg인 큰 토스터처럼 생긴 시제품이 완성됐습니다. 사슨은 동료였던 조이 마샬을 모델로 처음 촬영을 해봤어요. 셔터 속도는 20분의 1초였지만, 이미지를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하는 데 무려 23초나 걸렸습니다. 다시 재생 장치를 통해 TV 화면에 첫 이미지가 뜨기까지도 또 23초를 기다려야 했죠. 처음에는 조이 마샬의 얼굴이 뚜렷하지 않고 흐릿하게 나타났지만, 사슨은 포기하지 않고 배선 일부를 고쳤습니다. 그 결과, 거친 흑백 픽셀로 이루어진 그녀의 얼굴이 드디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죠. 이렇게 세계 최초의 디지털 사진이 세상에 등장한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닥 경영진은 이 혁신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스티브 사슨이 직접 경영진 앞에서 시연회를 열었지만, 그들은 기술의 원리에는 큰 흥미를 가지지 않았고 오히려 “누가 이런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싶어 하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시 코닥은 필름과 인화지 판매로 엄청난 이익을 내고 있었기 때문에,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오히려 기존 사업모델을 위협하는 위험요소처럼 보였습니다. 한 간부는 당시 등장한 애플의 초기 컴퓨터 보드와 계산기 가격을 예로 들며 “1,100달러나 되는 돈을 주고 성능도 시원찮은 디지털카메라를 굳이 살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게다가, 35달러만 내면 훌륭한 필름 카메라도 살 수 있었으니 더욱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무어의 법칙과 코닥의 엇갈린 운명  


    그래도 스티브 사슨은 포기하지 않고 언젠가 기술이 대중화될 시기가 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그는 반도체 성능이 2년마다 두 배로 빨라진다는 ‘무어의 법칙’을 근거로 삼아, 디지털카메라가 필름 품질을 따라잡으려면 앞으로 15~20년쯤은 더 걸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코닥의 첫 소비자용 디지털카메라인 ‘DC40’은 그로부터 18년이 지난 1995년에 출시됩니다. 1978년 코닥은 디지털카메라와 관련된 첫 특허를 취득하기도 했으며, 이 특허만으로도 2012년 만료 전까지 수조 원의 라이선스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브라이스 베이어 등 동료 엔지니어들이 디지털 센서에 색을 입히는 ‘베이어 필터’를 발명하는 등, 기술 발전도 꾸준히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코닥 경영진은 필름 산업이 무너질까 두려운 나머지, 디지털 전환에 진심으로 나서지 못했습니다. 결국 코닥은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2012년 파산 신청을 하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코닥이 디지털 기술을 못 본 척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일찍 발명해서 자신들의 거대한 필름 시장을 스스로 포기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고 평가합니다.

     

     

     


    지금 뉴욕주의 로체스터에 있는 조지 이스트먼 박물관에는 스티브 사슨이 만든 최초의 디지털카메라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는 2009년 미국 최고의 과학상인 국가 기술 혁신 메달을 받았습니다. 1998년, 옐로스톤 국립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로 간헐천을 찍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오랜 꿈이 현실로 이루어졌음을 실감했다고 합니다. 23초나 걸리던 저장 시간과 거칠었던 흑백 이미지로 시작된 그의 ‘토스터’는 이제 우리 모두의 주머니 속 스마트폰 안에서, 매일매일 세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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