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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무역 역사에서 전설이 되어버린 종 Zong 호 사건맛난고의 정보 2022. 8. 13. 14:48반응형
때는 18세기
이 때는 삼각 무역이 유행하던 시기였는데
삼각 무역 이라는 것은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돌아가는 항로를 뜻함.
유럽에서 무기나 공산품을 아프리카에 팔고
아프리카에선 흑인 노예를 사서 아메리카로
가 판 뒤
아메리카에선 은,담배, 설탕 등을 사서
다시 유럽 각지에 파는 삼각형태의
무역 항로임.
이 무역 항로는 최고의 이윤과 구매,
판매 효율 그리고 최적의 항로를 제공했기에
누구나 돈과 배만 있으면 하고 싶어하는
방식이었음.
그리고 이 무역에 뛰어든 네덜란드의
무역 상사 소속이지만 영국 리버풀 노예 무역
신디게이트가 대신 관리하는 종 Zong 호도
있었음.
종 호는 전형적인 노예 무역선으로
50여 항해를 무사히 마친 역사 깊은
노예 무역선이었는데
1781년 11월 이 때도 종 호는 평균 노예수를
한참 과적해 총 422명의 노예들을 아메리카로
끌고가던 중이었음.
당시 종 호의 선장은 항해와 선장 경험 모두
부족했던 콜링우드가 맡았는데 문제는
자메이카로 향하던 중 콜링우드가 병에 걸려
지휘를 못 하게 되자 임시로 노예선 선장 경력
이 있던 선원이 임시 선장이 되었는데 실수로
보급항에 정박하지 못 하고 그냥 지나쳐버림.
게다가 항로를 잘못 정해 정상 항로에서
이탈하는 바람에 아예 자메이카를 지나쳐
버렸음.
결국 괴질과 식량난으로 62명의 노예들과
선원 일부가 사망하며 절박한 상황이 됨.
그래도 중간에 큰 비가 내려 식수 문제는
해결되고도 남았음.
이것도 문제인데 더 큰 문제는 돈(?) 이었음.
왜 돈이 문제냐면 당시 종 호 보험 조건상
노예가 자연사하면 선주 책임이어서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았지만
화물인 노예가 사고로 손망실 될 경우 선주와
보험사가 같이 부담하는 공동 해손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임.
이 때문에 육지에 도착해도 노예들이 자연사로
처리되기 때문에 선주가 책임을 저야했음.
해서 선원과 선장이 모여 회의한 결과
노예들을 바다에 버려
손망실 처리해버리기로 함.
그것도 만장일치로
그렇게 시작된 학살의 결과 442명 중 208명의
노예들만이 살아서 자메이카에 도착할 수
있었음.
바다에 버려진 노예들 중엔 남여 가리지
않았고 심지어 영유아 아동도 포함되어 있었음
긴 학살 끝에 자메이카에 도착하였고
남은 노예들은 1명당 36파운드에 팔려나감.
그리고 선장 콜링우드는 자메이카 입항 후
4일만에 병사함.
여기서 끝났다면 솔직히 그냥 무역선 사고로
이름도 남기지 않고 파묻혔겠지만...
선주인 리버풀 노예 무역 신디게이트가
보험사에 손실 배상을 요청하고 보험사에서
손배를 거절을 하면서 일이 커짐.
재판에서 항해 일지가 사라지고 선장이
자메이카에 도착 후 사망해 증언을 들을 수도
없고 선원들 서로의 증언이 엇갈리는 일이
벌어지며
주목을 받았고 해방 노예 올라우다흐 에퀴아노
와 노예 폐지 운동가 그랜빌 샤프에 의해
세상에 참상이 폭로됨.
그랜빌 샤프는 이 사건의 중심인 종 호의
선원들을 살인죄로 고발함.
결국 이 사건은 국왕 입회 재판으로
까지 번졌음.
긴긴 재판 끝에 결론만 말하자면
사건은 살인이 아닌 식수 부족으로 불가항력에
의한 고의적 화물 파손으로 결론 지어짐.
중간에 큰 비가 와 식수 문제가 해결 되었음
에도 학살이 지속 된 사실이 폭로되었지만
딱히 재판에 큰 영향을 주진 못 함.
결국 고의적 화물 파손으로 보험사의
손배 지급 거부가 정당하다고 결과가 뜨면서
사건은 끝남.
이로 인해 노예 무역법이 개정 되어
기타 모든 불법적 위험, 손실 또는 예기지
못 한 사태에 대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조건이 추가됨.
물론 이 사건이 인권사에 아무 의미 없이
끝난 사건이 아니었음.
이 일로 큰 분노를 느낀 그랜빌 샤프가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섰고 노예 무역에서
일어나는 범죄와 대한 증거를 수집.
곧 퀘이커 교도들와 런던 종교 친우회를
중심으로 노예 무역 반대 열풍이 시작됨.
곧 성공회 교도들과 성직자들과 뜻을 모으기
시작했고 노예 폐지론자로 전향한 노예 무역선
선장들과 연계해
노예 무역 중 생기는 일들 참상에 대해 사회에
폭로하면서 영국의 노예 무역 폐지의 발판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됨.
이와 비슷한 사건들 중 유명한 것으로는
영화로도 나온 아미스타드 호 사건이 있음.반응형
< +추가 댓글 >
유럽.... 그야말로 광기의 지대..
히틀러에게 절하시오 항상
히틀러는 사실 당시 유럽인 평균 이었지.
히틀러가 히틀러인 이유는 유럽인들이 늘 하던
짓을 같은 유럽인 상대로 했다는 것 뿐.
이런 ㅅㅂ 맙소사
킬몽거가 빡친게 이해 간다.
이 와중에 아무리 옆나라 일이라지만
"큰 힘에는 큰 책임이 존재한다."
가 메인 교훈인 세계관에서 나몰라라 숨은
와칸다한테 빡친것도 이해 가고
문제는 노예를 개같이 대우한 백인들도 개색기
지만, 애초에 저 노예를 잡아온 애들은 같은
흑인이었다는 게 더 골 때림.
흑인이라고 다 같은 흑인이 아니라 수 많은
민족들이 엮여있음.
솔직히 아프리카 대륙의 규모와 인구를
생각하면 그들을 모조리 흑인으로 묶는 게
오히려 인종차별 아닌가?
당시 영국이면 백인 하층민 영국인들도
노예와 별다를거 없는 대우를 받던데
'고의적 화물 파손'
와 진짜 광기 그 자체네
이거보다 조금 더 옛날 유럽에선
인디오는 인간인가? 하는 바야돌리드 논쟁이
있었었지
결국 인디오는 인간으로 결정나
노예 삼는것을 금지했지만
더 싼 값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이 들어오고
얘넨 그런 기회도 없었었지
어메이징 그레이스 작사가인 존 뉴턴도
노예선 선장 출신이었음. 폭풍우 속에서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노예들을 보고 인간과 신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게 되었고, 이후 노예
처우 개선과 노예제 폐지를 위해 힘 썼다고
하지. 어메이징 그레이스 가사 내용도
존 뉴턴이 자기 과거를 돌아보며 지은거고.반응형'맛난고의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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