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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의 할머니'라고 불렸던 영국 '빅토리아 여왕' 이야기
    맛난고의 정보 2022. 6. 5.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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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기 당시에, 최전성기를 자랑했던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인 영국의 신화를 
    이룩한 국왕이라는 평을 들었던 여왕인 
    빅토리아 여왕은 '유럽의 할머니'이라는 
    이명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그가 유럽 
    여러 국가의 왕실에 시집을 보냈던 딸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임.

    그리고 그 딸들을 통해서 유럽의 왕가가 
    번성하기도 한 만큼, 유럽의 할머니라는 
    이명이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음.

    그가 동갑내기 남편이자 부군인 '앨버트 공'
    과의 사이에서 총 9명의 자녀를 낳을 만큼 
    많은 자녀들을 낳았는데, 사실 빅토리아 여왕은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남편인 앨버트 공이 아이들을 매우 좋아하고 
    사랑했기 때문에 아이들을 많이 낳았던 거임.

    그래서 빅토리아 여왕은 
    임신 - 출산 - 임신 - 출산 - 임신 - 출산 
    이 사이클을 반복하는 매우 바쁜 삶을 살았음.
    그래서 총 9명의 자녀들을 낳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은 자녀들을 
    사랑으로 양육했고, 좋은 아버지가 되어
    주었다고 함.

    하지만 여왕의 남편인 부군이라는 자리가 
    무슨 실권이 있는 자리도 아닌 명예직인다가 
    아내인 빅토리아 여왕의 신경질을 앨버트 공이
    묵묵히 받아주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앨버트
    공은 나름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하지. 그래서 부부 사이에 다툼도 있었고.




    하지만 남편이자 부군인 앨버트 공이 만 42세
    라는 나이에 요절을 하자, 그동안 앨버트 공
    과의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던 빅토리아 
    여왕은 남편을 잃은 충격과 상실감이 너무 큰 
    나머지, 앨버트 공의 사후 모든 국정에서 손을 
    떼고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춘채 윈저 성에 
    은거해버렸음.

    빅토리아 여왕은 앨버트 공이 사망한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언제나 앨버트 공을 추모
    하는 의미에서 검은 상복만을 입고 지내는 등
    우울한 감정을 숨기려 하지 않았고, 오죽하면 
    수십년간 이 검은 상복을 주로 입어서 
    검은 상복은 빅토리아 여왕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음.

    하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가지고 있었던 
    하노버 왕조의 혈우병 인자는 5명의 자녀들
    에게 유전이 되어버렸고, 빅토리아 여왕의 딸이 
    시집을 갔던 러시아 왕가에서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아들이 혈우병 때문에 피가 
    멈추지 않아서 이를 낫게 하기 위해 라스푸틴을 
    중용했다는 사실은 유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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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저 혈우병이 결과적으로 공산주의 소련이 
    탄생한 이유 중 하나가 되었다고 봐도 될 듯


    솔직히 피의 일요일에 그짓거리 한거 봐선 
    그거 아니라도 공산주의 튀어나올만 했음


    그래도 제1차 세계대전 터지기 전까지는 
    스톨리핀도 기용하고 프랑스 차관도 
    들어오면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졌을 걸. 
    제1차 세계대전 치르느라 나라 기둥뿌리 
    뽑아먹고, 내정은 황후-라스푸틴에게 맡기면서 
    박살난 끝에 혁명 터진 거니까.


    아니 여기서 라스푸틴이


    그 할망구 시절에 전세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를 생각해보면.....하긴 유럽의 
    할망구지 미개한 식민지의 할망구는 
    아니었겠지만


    하지만 아일랜드 인은 굶겨 죽임. 할머니 맞냐?


    하얀 흑인이 말대꾸?


    유럽 왕실의 할머니지 유럽 민중들의 할머니는 
    아니니까


    진짜 사진 끔찍하다...


    미국으로 수출되는 아일랜드 노예들이래요


    수상한 인도시종.


    부부 싸움나면 여왕에게 뭐라할 수 없어서 
    남편은 각방으로 가서 문 닫고, 여왕은 
    화 풀리고 문 열어 달라고 애원하고 그럼


    앨버트 공은 개존잘이었고 빅토리아 여왕 
    쪽에서 먼저 반하고 먼저 고백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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