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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시절 개발된 금속활자가 대중적으로 쓰이지 못 했던 이유
    맛난고의 정보 2022. 7. 1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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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량 양산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고려시절에는 납으로 주조해서 만들었는데

    납이라는 금속 특성상 너무 물러서 

    10장 정도 찍으면

    다시 재조립하고 손을 봐야할 정도

    목판에 비해 손이 매우 많이가고 

    책도 덜 찍혀나왔다.

    이걸 그나마 쓸만하 게 손 본게 조선인데

    그 때 사용한 금속이 조선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구리라서

    명과 일본에 수입해서 써야했고 

    구리는 화포 제작에도 들어가는

    주요 전략자원이기 때문에  

    대량생산하기 힘들어

    대중적으로는 목판이나 필사를 

    많이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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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결국 표의문자인 한자가 너무 많아서...


    +식자층은 전근대에는 생각보다 적고 
    책의 종류도 한정되어있었다. 문서들 일일이
    찍어낼거면 직접 쓰는게 낫고 금속보다 
    목활자 파는게 더 쌌다.
    많이 읽는 책들은 차라리 목판 한번 파두면 
    두고두고 쓸 수 있어서 목판 파는게 
    (당시 기준으로는)이득이었다


    궁금한게 목판인쇄물인지 금속활자 인쇄본
    인지 인쇄물만 봐서 알 수 있나?


    활자의 재질에 따라 먹이 묻는 거랑 찍히는 
    게 달라서 정밀 검사하면 파악이 가능함.


    목판은 같은 글자라도 모양이 미묘하게 
    다른데 금속활자는 같은 글자는 모양이 
    똑같음.


    먼 옛날엔 고려 금속활자가 구텐베르크보다 
    몇백년 빨랐다고, 구텐베르크를 빠는 서양을 
    까는 풍조도 있었음. 우리가 만든 건 프린터
    부품이고, 구텐베르크는 프린터를 통제로 
    만든 거여서 2010년대 중후반부터 넷에선 
    이런 기류가 수그러들고 국가에서나 
    구텐베르크 운운하며 계속 빨아주고 
    있지마는..


    인쇄기보다는 대량인쇄술이 
    적합한 명칭이긴 함
    사실 방식은 같음
    종이
    활판(혹은 목판)
    배치하고 눌러서 찍어내는거
    이걸 수작업으로 하냐 기계화했냐가 
    첫번째 차이, 다음은 그게 보급될만한 
    수요가 있었느냐가 두번째 차이


    사실 모든 것을 해결하는 건 
    결국 규모의 경제임.
    동아시아에서 판형 활자 인쇄가 후발주자였던 
    일본이 에도시대에 3색 컬러 인쇄 기술까지 
    개발할 있었던 건 인쇄물이 일부 계층의 
    문화에 그치지 않고 서민들에게까지 퍼졌기 
    때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最高)든 
    최고(最古) 물량을 이길 수가 없음. 
    시장경제야말로 불가능을 가능토록 만드는 
    최고의 발명품.


    정확히 말하면 구텐베르크가 발명한건 셋임
    1. 납활자
    2. 인쇄기
    3. 이에 적합한 잉크
    + 이에 적합한 종이 찾아냄
    이를 합쳐서 '인쇄술'이라고 묶은거
    인쇄기 방식도 기계화시킨거지 판에 종이 
    대고 누르는건 같음
    그리고 '활자 짜맞춰서 찍어내는걸 단순히 
    금속으로 바꾼걸 가지고' 라고 하는데 
    이것도 작은 공은 아님
    인쇄기는 결국 활자가 있어야 인쇄 
    가능하니까 그 기반이 되는거라 흔히 
    구텐베르크 발명을 '금속활자'라고도 
    부르는거고
    차라리 문제 지적할거면 식자층 수나 
    비중 따지는게 나을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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