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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에서 중국 비단이 비쌌던 이유 - 실크로드
    맛난고의 정보 2022. 12. 2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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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은 실크로드인데 
    비단길과는 거리가 멀었던 유통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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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그리고 키로마다 배치되어 
    항시 리스폰 되는 도적들


    연계 배송 해줄께. 이리 내놔.


    몽골이 실크로드를 통일한게 업적 취급되는 이유
    가 몽골이 실크로드 관리하면서 무역으로 
    밥 벌어먹으려고 그 동네에서 깽판치던 
    군소 군벌, 도적 무리 정리해서 안전한 통행이 
    가능해져서 그렇다더라


    도적도 뺏은 비단 팔아야 돈으로 바꿀 수 
    있었을테니까 
    결국 걔들도 뺏어서 운반했으려나


    ㅇㅇ혹은 지들과 손잡은 상인들에게 팔거나


    여러분을 안내해주는 신나는 유목민들과 
    아랍전사들도 있어요!


    저래서 지금도 아프간 같은 중앙아시아 남자들이 
    걷기 시작하면 총 쥐어준다더라. 아버지가 
    죽으면 자기가 가족을 지키라고.


    비행기 타고 가지 왜 걸어다닌거야


    비행기 값이 비싸서


    헉 그걸 몰랐네


    노잼


    아랍 전사들의 대공 rpg 화망 때문에 따흐흑....


    하필 그때 라이트형제들이 태어나질 않아서...


    그 당시에는 국가간 영공을 안열어줘서 
    잘못하면 대공미사일 맞고 격추당함


    산에 들에 사막에 고원에 도적까지
    전부 다 무료!


    저거 보면 진짜 대단하긴 해... 당시 양잠이 
    동아시아 전략산업이라서 실크 만드는 법을 
    몰라서 서양에서는 나무에서 비단이 열린다고 
    믿거나 온갖 이상한 설화가 퍼졌댔지. 
    저 실크가 질겨서 기사들의 내복에 방검용으로 
    쓰여서 수요도 또 많았고.


    석유 화학이 발달하기 전까지 인간의 기술로 
    만들수 있는 직물 옷감 중에 가장 질기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따뜻하고, 가장 가벼운 
    물건이 바로 비단이었다고 함.
    단순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성능 자체가 
    미친 물건이었다고...


    온갖 상상을 다했지만 벌레 똥꼬에서 나온다는 
    상상은 못했겠지 ㅋㅋ


    그래도 당시엔 역참마을이 많아서 
    이처럼 황폐하진 않았다는데


    그런데 역참마을 이용하는 비용을 생각하면 
    비단이 점점 비싸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ㅇㅇ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나름 무역거점 노릇 
    하면서 국가 규모는 작을지언정 부유한 경우가 
    많았음


    ㅇㅇ사마르칸트같이 오히려 대상들 돌아다닐
    시절엔 저 정돈 아니었다고함.
    오히려 사마르칸트는 당시 세계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을정도니. 대상이 가져오는 경제효과와
    그 파장 생각하면.


    실크로드 쓸때야 돈이 굴러다니니까 황폐해도 
    사람이 모여서 꾸역꾸역 마을을 이뤄 살았는데 
    오스만이 십자군하고 치고받으면서 길 막하니까
    유럽이 빡쳐서 대항해시대를 열어 버리는 바람에 
    나가리...
    돈이 없으면 사람은 흩어지지


    근데 저 길이 가장 편안하고 빠른 길이였던거지?


    지금은 저 꼴이지만 저 때는 녹초지였음


    솔직히 편한길은 바닷길인데... 중국 한족의 
    전성기인 수~명나라 시대에 보물을 노리고 
    날뛰는 해적 때문에 셀프 해안봉쇄 하고 육로만
    사용함. 이게 결국 중국의 패착이 됐다지. 
    청 초기만 하더라도 서양의 스페인 군대는 쨉도 
    안됐는데...


    4천년전 무덤군하고 그 근처 식생 조사하니까 
    지금보단 덜 하지만 대부분 사막이었고
    오아시스나 강줄기가 수십년~100년 주기로 
    바뀌었다고 함 그래서 옮겨다닌 탓에 당시에도 
    버려진 도시나 마을은 존재했고 
    할아버지 태어나고 자란 곳을 손주나 증손주 
    세대에선 기억은 커녕 찾지도 못 하는 경우도 
    있었을거라고


    명나라때는 실크로드 육로가 몰락했을껄...?
    그래서 실크로드 통로인 간쑤성 일대도 
    떡락했을텐데


    맞음...실크로드를 "직접" 통제했던 건 
    당나라가 마지막...
    원나라는 중화제국이긴 하지만 몽골 세력이고...
    뭐 명나라때도 실크로드 거점을 지배하던 
    차가타이 칸국을 굴복시키고 조공국으로 만들긴
    했는데...


    실크로드중에서 저 사막 한복판에 있던 도시들은
    과연 어땟을까 궁금하더라...
    지금은 건물이나 건물의 흔적만 남아있는데들 
    보면 진짜 궁금함...


    비단은 누에고치의 희생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니 
    실크로드는 그 길을 다니는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이라 봐도 되것제.


    운반료 + 관세 + 도적들


    저 시대면 왕복 며칠 걸릴까? 년단위 걸리나?


    실제 저거리를 다간경우는 극히드물고.
    대부분은 부분왕복이었다고.


    왕복다니는 대상보다는 
    유럽 상인-> 아랍에서 사옴 
    아랍상인 -> 중앙아시아에서 사옴, 
    중앙아시아 상인 -> 중국에서 사옴 이랬을 걸?


    6세기 이후로 로마에서 비단생산을 시작했지.


    하지만 질과 양이 다 중국비단에 밀려서 사실상 
    2급 취급이었음.. 그래서 청나라때까지도 
    중국비단이 최고의 거래품중 하나였음..


    도적놈은 무섭다. 하지만 가장 무서운 것은 
    관세도, 지역 벼슬아치도, 도적놈도 아니다.
    약탈자마저 떠난 땅의 적막이 나를 기다린다


    다음날 일기 
    - 아 아니다 역시 도적놈이 가장 무섭다


    도적놈 : 뭐여 시발 적막한게 무섭다고 
    지랄하길래 3일 밤낮을 달려왔는데


    어째선지 바바예투가 머리 속에서 자동재생된다


    중간에 유적지들은 전성기 때 어땠을까


    실크로드 무역로 주요 거점중 하나인 
    사마르칸트의 티무르 영묘
    여러번 초토화 되었지만 그만큼 다시 융성한 
    동네기도 함


    험난한 여정을 지나서 도착하는 순간 
    그냥 부르는게 값


    실크로드 이전에 차마고도가 있었다.
    여긴 진짜 개노답이드만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나른건 아니겠지?
    거래하고 거래하고 거래하고 그랬겠지?


    실크 로드 자체는 로마 시절부터 있었지만 
    정말로 서양인이 중국인 본건 몽골 때 정도니까
    아마 다들 중동까지만 가고 안 갔을거 같은데 
    기록 꽤나 세세하게 남기는 로마인들인데 
    동방에 신비한 제국의 상인이 들렀으면 
    그거 기록 안 했을리가


    중국인이 서양 간건 몰라도 서양에서 중국 간 
    기록은 끄준히 있어왔음
    한서, 북사, 당서, 송사, 원사, 명사에서 
    꾸준히 저 멀리 서쪽에서 대진, 불름
    (둘 다 로마)인들이 왔다간 기록이 있음


    특히 한나라때는 중국쪽도 나름 로마인과 
    접촉하고 싶어서 여러번 사람 보낸 적도 있었음
    중계무역으로 먹고 살던 안식국(파르티아)가 
    바다 건너야 하는데 거기 위험해~가지마~하고 
    구라쳐서 제대로 만나진 못했지만


    넹.시리아 유명한 그 팔미라( 한나라 시대 
    비단발굴 되서 유명하고 송유관이나 오아시스땜
    에 현재도 나름 십만단위로 인구있는 동네)에서
    발굴한 기록보면 그때도 상인단<->상인단에 
    돈 대주는 지역 후원자들.식으로 운영했다고...


    하나같이 장관인 풍경. 수백년간 활기 넘치고 
    온갖 사람들이 오갔을 유적지같은 마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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