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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전국 통일을 한반도의 삼국 통일로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
    맛난고의 정보 2023. 7. 1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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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년 ~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467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대혼란 시대인 센고쿠 시대(전국 시대)를 완전히 
    종식시키고 1587년에 일본 전역을 통일한 인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도 일본의 역사 교과에서도 이렇게 가르치
    고 한국의 국사 교과서에서도 1587년에 있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국 통일을 짤막하게나마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그런데 일본식 전국 통일에 대해서 한 번쯤 공부
    를 해보신 분들은 일본식 전국 통일에 대해서 
    뭔가 의아함을 느끼시는 경우도 많이 있으실 겁
    니다. 그 개념이 한반도의 삼국통일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2년에 있었던 
    아케치 미츠히데가 일으킨 혼노지의 변을 진압한 
    이후에 일본 전국을 통일하는 과정을 보면
    그 과정이나 결과가 상당히 특이합니다. 

    상대방을 완전히 멸망시켜서 복속시키고 완전히 
    자신의 세력권 안에 두는, 우리가 흔히 알고 
    배웠던 한반도식 삼국 통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역을 통일하는 과정
    에서 상대방을 어르고 달래기도 하고 협박도 하고 
    무력 사용도 불사하는 등 상당히 다양한 방법을 
    통해서 일본 전역을 통일해 나갔습니다. 하지만 
    통일의 막바지에서 결국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한 가지 벽에 부딪히게 되고 큰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라는 큰 장벽이었죠.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년 ~ 1616년)

    실제로 히데요시는 도쿠가와의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해버리고 일본의 전국 통일을 완성할 생각이
    있었습니다만, 이에야스는 오히려 군사 작전을 
    통하여 도요토미의 군대를 무찌르는 성과를 
    거두게 되고 히데요시는 이에 낭패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정치적인 술수의 달인답게 
    이 분야에서 식견이 남달랐던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아가는데 
    성공하게 되고, 도쿠가와는 자신의 본거지이자 
    영지를 에도 지방으로 옮기게 되고 히데요시의 
    신하를 자청하게 되면서 일본이 말하는 
    전국 통일은 이렇게 완성이 되었습니다.

    아니, 얼핏 보면 완성이 된 것처럼 보였다고 
    보는게 맞을까요? 사실 히데요시는 이에야스를 
    무력으로 굴복시키지 못하고 멸망시키지 못 했던 
    시점에서 일시적으로 정치적인 타협을 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이에야스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생각했고 뒷날에 후환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
    에서 이는 훗날 히데요시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오게 됩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뭐야? 저렇게 
    정치적인 타협을 해놓고서 전국 통일을 했다고?"
    라는 말이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완전한 
    통일도 아닌 그런 이상한 정치적인 타협을 했던 
    것이었습니다.




    결국 임진왜란 이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지원병 요청을 갖은 핑계를 대며 묵살해왔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세력을 온존시킬 수 있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8년에 사망하자 그 동안 
    충성하는 척 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결국 서서히 고개를 쳐들며
    본색을 드러내게 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반도식 통일이었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저렇게 세력을 온존하며 기회를 엿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하는대로 2년 후
    인 1600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으킨 
    세키가와라 전쟁으로 인해 동군인 이에야스가 
    완전한 승리를 차지하게 되고 서군이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세력은 완전한 멸망 수순을 
    밟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래서 신라의 삼국 통일이나 
    고려의 후삼국 통일같은 한반도식 삼국 통일에 
    대해서 익숙하신 분들 중에서는 일본 전국 통일을
    보고 "저게 무슨 전국 통일이냐?"라던지 "일본식 
    전국 통일의 개념은 뭔가 잘 이해가 안 된다."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결국에는 후환이 남을 수 밖에 없는 지극히 
    불안정하고 불완전한 통일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 생각하실 수도 있고, 신라나 고려의 삼국 통일
    이나 후삼국 통일은 상대 국가를 확실하게 멸망
    시키는 사실상 뒤끝이 거의 안 남는 확실한 통일
    이었기 때문에 더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중앙집권국가가 아니라 
    각 영지가 수십개로 나뉘어져 있는 봉건 제도를 
    오랫동안 유지해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일본의 
    저런 불완전하고 불안정하기 짝이 없는 통일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추가 댓글 >

    우리나라 역사랑 다른나라 역사 볼 때마다 항상 
    신기한게 나름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였다는게 
    신기함


    조선이 워낙 길다보니까
    다른국가의 중세에만 존재했단 국가랑 
    근세 근대까지 있었던 조선을 비교해서 그랭


    종교받아들여서 중앙집권(율령반포) 까지 한반도 
    국가들이 같은 테크를 써서그럼


    고려 초만 하더라도 지역 군벌 귀족들이랑 
    결혼 동맹해서 유지했으니까 우리나라의 '조선'의 
    중앙집권이 대단한 거긴 함


    신라 때는 한반도 동남쪽에 몰려있는 경주가 
    수도라서 변방으로 갈수록 통제력이 떨어지는데
    수도가 개성으로 가기시작하면서 중앙에서 지방
    을 통제하기가 쉬워짐.


    이에야스는 회유해서 굴복시킨거니 잘모를수있음
    히데요시 생전에는 깝안치고 순순히 굴었고


    제일 중요한거 집자면 당시 일본은 미나모토노 
    요리모토의 첫 무가 정권 때부터 왕권신수설이 
    부재했지. 각 영주와 가신들의 배신과 이적도 
    섬기는 절대자에 대한 충의와 신성성이 없었고. 
    그러던 일본이 유신지사들에 의해 왕권의 신성을 
    부활시켰는데...그게 존황양이 하면서 인신을 
    세우고 전체주의 몇사발 들이킨거라 세계적 
    메이와꾸 초래한거고.


    세계적 메이와꾸 ㅋㅋ


    ㅇㅇ 일본럼들 메이와꾸 존나 싫어함서도 
    침략전쟁이나 방사능 오염수 방류 같은 세계에 
    대한 메이와꾸엔 존나 둔감하고 뻔뻔하지


    이게 골 때리는 게 조슈번이랑 사쓰마번 애들이 
    도쿠가와 막부 타도를 하고는 싶은데 명분이 
    없음. 그래서 들고 온 게 천황(...) 결국 천황 복고
    를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막부에게 반란 
    일으키는 수단이었음


    히데요시때도 이에야스가 새해인사를 가는데 
    밤에 갑자기 나타나서 제발 마음으로는 
    굴복하지 않아도 좋다. 인사자리에서 나에게 
    공손하게 인사해달라 부탁했다는 얘기도 있자너..


    썰은 많이 들었는데
    카더라야 아니면 진짜 누가 기록한거야?


    2006년의 일본 사극인 공명의 갈림길에서 저런 
    연출이 있긴 했음. 외교적인 노력으로 어떻게든 
    수도로 상경 시킨 이에야스의 숙소에 방문한 
    히데요시가 과거 노부나가 밑에 있던 도키치로 
    처럼 굴면서 이에야스에게 다음날 회담장에서 
    잘해달라고 부탁하는 거.
    드라마의 각색이니 사실로서 믿지 않지만


    일본이 저렇게 이에야스 이후로도 번 체제로 
    봉건제가 남은 덕에 메이지 유신이 일어날 수 
    있었던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음


    맞긴 한데 존나 요상한 봉건제라서 봉건 영주들
    이 에도에 일정 기간 와서 인질이 되는 이상한 
    제도로 구현됨...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다 보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자기 섬에서 무슨짓 할지 모르기도 하고 
    영주 입장에선 중앙에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봐야할 때도있고 그러니까 서로 맞아떨어진거
    라고 봄


    그럼 정치적 통일은 히데요시가 무력적 통일은 
    이에야스가 한거군요


    이에야스도 정치 고단수였음. 히데요시보다 
    더하면 더했지. 당장 세키가하라도 
    도쿠가와 vs 도요토미가 아니라 사실상 도요토미 
    내부의 파벌 싸움이었음. 여기서 이에야스가 
    명분과 실리를 엄청나게 챙긴 거고


    사실 삼국통일도 기존 왕족 귀족 다 인정해주는 
    전국시대식 통일임. 두품제도 그거 인정해서 
    6두품은 후작 5두품은 백작 이런식인거고.
    찐 중앙집권은 고려중기 넘어서야 가능한거지.


    내 짧은 식견으로는 그냥 고구려의 존재가 저런
    상황을 강제한거 같음. 성인식이 다른 나라에 
    가서 말 훔쳐오는 것인 약탈 기마 국가 (존나 쌤)
    이걸 어떻게 흡수시킬건데


    크킹으로 치면 상대 영지를 완전히 몰수하고 
    내 봉신에게 주는게 아니리 그냥 세력 멀쩡한 놈
    을 정치질로 봉신화해서 통일한거라 반란이 
    날 수 밖에 없었단건가


    우리처럼 분열된 나라가 합쳐진게 아니라
    원래 한 나라인데 그 안에서 권력다툼을 한거라고 
    보면 됨. 삼국지에서 한나라가 안 망하고 군웅중 
    누구 하나가 헌제 위에 모시고 반항하는 제후들 
    다 줘패거나 달래서 안정시켰다고 보면 되는 
    전개


    저걸 우리는 중세 봉건사회라 합니다


    전국 통일 이후에도 충성만 할뿐이지 각자가 
    자기 쿠니의 영주로 계속 통치를 했으니 
    한국이랑은 완전 다르네요


    얘네들 임진왜란 때, 무지성으로 닥돌해서 수도 
    한양을 점령함. 이러면 전쟁이 끝날 줄 알고.
    그런데 항복을 안 하고서 항전하니까 어리둥절
    했데잖어. 전국시대땐 자신의 본거지를 잃으면 
    앨리전 패배였는데 조선에선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더라도 왕만 살아 있으면 국가가 끝난 게 
    아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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