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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역사상 가장 깔끔하게 끝난 왕조 - 송나라
    맛난고의 정보 2022. 8. 4.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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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송의 수도는 함락하고 쿠빌라이 칸의 군대는 
    황제를 추격했다.

    충신 육수부(陸秀夫)는 어린 황제 소제를 데리고
    수군 대선단을 부리며 해상에서 저항한다.

    이미 망한 것과 다름이 없는 상황과 
    다름이 없었으나 각지에서 총 20만의 의병이 
    모였고 함대는 1,000척에 이르렀다.

    육수부는 이들을 이끌고 중국 대륙 남쪽의 
    애산에서 최후 결전을 준비한다.




    서로 밧줄로 묶고 화공에 대비하여 진흙을 잔뜩 
    칠한 1,000척의 함대의 힘으로 첫 공격은 
    어떻게든 격퇴했으나

    질병과 기아에 시달리는 송의 병력으로 
    원나라의 대공세를 견딜 수 없었다.

    원이 쏘아올린 화살비가 갑판에 내리 빗발치고, 
    사방에 죽음이 가득했다.

    대원수 장세걸은 패색이 짙은 것을 느껴 
    육수부와 소제를 데리고 탈출 계획을 
    세우려 했다.

    육수부는 소제에게 대학을 가르치던 중이었고, 
    육수부는 무슨 짓을 해도 끝장이란 것을 
    직감하여 소제와 함께 투신했다.




    "폐하께선 오랑캐들에게 사로잡혀 
    욕을 당하시느니, 차라리 이 늙은이와 바다에 
    몸을 던져 순국하시어, 하늘에 계신 태종 폐하를 
    뵈는 것이, 대송의 천자로서 떳떳한 바가 
    될 것 입니다." 

    충신 육수부, 소제를 설득하며

    "내 다시는 제왕의 핏줄로 태어나지 않겠다!"

    어린 황제 소제, 뛰어들기 직전에


    "하늘이 대송을 망하게 하려거든 나의 배를 
    모조리 바다 속에 가라앉게 하소서!"

    대원수 장세걸, 대월에 망명할 생각으로 
    후퇴하던 중 폭풍을 만나자

    "내 할일은 다 끝났다"吾事畢矣(오사필의)

    시와 글로 송나라 부흥 운동을 이끌던 
    남송 최후의 승상 문천상, 본토에서 처형 직전에



    육수부, 장세걸, 문천상 세 충신도 죽고 
    송 왕조의 유일한 핏줄인 소제마저 죽어

    그렇게 모두 가라앉아 송나라는 부활의 건덕지 
    조차 없이 비극적이고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



    사족으로 쿠빌라이 칸은 문천상을 상당히 아껴서
    최후의 최후의 순간에도 회유하려고 애썼는데 

    그 덕분에 천하의 칸이 처형 시일을 늦추는 등 
    추한 모습을 비추게 했다.

    결국 문천상이 칼날에 목이 날아가는 순간에도 
    칸은 처형 취소를 명했으나 이미 형장의 이슬로 
    떠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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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칸-


    마지막까지 저항했다고 백성 전체가 가축취급 
    당하고...


    저 중 상당수는 일본 정벌에 끌려와서 죽음.
    애산 바다에서 빠져죽을 위기를 벗어났는데 
    한반도까지 끌려와 남의 나라 바다인 현해탄에 
    빠져죽은거.


    중국 역사에 이 정도로 최후가 비장한 나라가 
    없긴하지.




    모두 가라앉았는데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냐구


    솔직히 바다에 뛰어든 군병들중
    상당수는 살아남았겠지
    몽골 수군에게 잡히건 몰래 해변에 상륙했건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 병사들이 있으니까. 
    명 태조 외조부가 그 케이스.


    생존자가 꽤 있으니까. 명나라가 정통성을 
    저기서 찾음.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자가 10만 가까이 
    된다는 기록이 있음.


    저때 중원은 기빨려서
    명나라도 오래 못 간듯


    송태조 조광윤이 단서철권을 내린 시씨도 
    저 애산전투에 참가했다던가
    나라가 망할때 충신 한둘은 있었다지만
    남송은 적어도 망할때는 나름 복덕이 있었지.
    주원장네 외할아버지가 저 애산전투에 
    참여했다고도 하고


    시 씨는 대대로 단서철권을 내려 자신들을 
    우대에 주고 중용해줬던 송나라의 왕족에게 
    깊은 의리와 충성심을 지녀 마지막까지 함께했음






    안이 그건 천부인권 개념이 등장하고 2천년 
    가까이 지난 우주력 800년에 나쁜 거지만 
    저 때는 저게 최선이라고...


    400년 후 명나라 멸망할땐 필사적 저항이 
    아니라 자동문 오픈 수준으로 무너졌는데 
    그렇다고 청이 명나라 백성들을 살갑게 
    대해줬냐면 그런거 없고 양주십일


    현재 진행형으로 몽골이 다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고 있었는데 무슨 죄냐니;; 그거 싫어서 
    도망치거나 싸우려고 모인 사람들인데.


    항복해도 죽고 안해도 죽는게 저떄의 백성이야.
    쿠빌라이 칸이 특이한거지, 보통 몽골은 
    식민지를 말 그대로 갈아마시면서 굴렸어.


    초원은 약하면 뺏기는게 당연한 곳이라
    걍 뺏기느냐 한번 엉겨보느냐 하는 
    양자선택이었음
    유교가 고리타분한 꼰대라고 하는사람들 많지만
    그 유교도 백성 나름 챙겨야한다고 가르치는데
    유목민들은 그런거 없이 약하면 당하는게 
    당연한 섭리인 세계에서 살잖아


    유교는 되려 의외로 급진적인 사상이었음.
    보통 고리타분하거나 꼰대라고 생각하는 건 
    성리학에 과하게 심취한 유교 탈레반들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일제에 의한 변형을 거쳐 
    나온 유교도 아닌 괴기한 무언가


    개인적으로 옛 시대에 도덕. 철학 위에서 
    발전해 온 게 지금의 인권. 도덕이고 지금의
    세련되고 아름다운 사상. 상식. 인권에 미치지 
    못 한다고 마구 폄하하고 비웃을 필요가 있나 
    싶음


    참고로 유교는 백성을 "나름" 챙기는 사상이 
    아니라
    백성이 알파이자 오메가 그 자체인 사상임
    왕이 폭군이면 목 잘라버리고 새 왕 앉히는 게 
    신하로써 도리라고 할 정도라
    아무리 무지하고 간악한 자들조차 도덕으로 
    교화할 수 있다는게 베이스


    현대에서 흔히들 말하는 유교는 유교 전체가 
    아니라 성리학 개조 버전의 일제 변질버전이라고 
    봐도 무방함
    유교 중 성리학 부분을 베이스로 조선이 
    건국됐는데, 어디까지나 백성을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수단이었던 조선초와 달리
    수양이 왕위를 찬탈하고 왕권 온리 + 왕권 폭주
    시 한정으로 신권 견제 체제였던 이방원이 만든 
    체제와 달리 쿠데타를 함께한 권신들의 권력이 
    과하게 강해져버리고 
    그거 견제하겠답시고 일 안하고 지방에 틀어
    박혀서 성리학만 공부하던 사림파들을 부족한 
    정통성 + 권신이 된 훈구공신 견제를 위해 
    훈구vs사림 구도를 만들려고 등용하기 
    시작하면서 당파싸움 스타트를 끊고
    결국 사림이 이겨버린 후에 사림 주도 하에 
    부국강병과 백성들이 잘먹고 잘살기 위한 
    명분이자 수단이었던 성리학이 되려 나라가 
    돌아가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주객전도가 
    되버리면서 개-판이 나기 시작하고
    그 탓에 현대인들에게 그 성리학적 가르침 
    갈고 닦는 거 = 유교라는 잘못된 인식이 박힌 건 
    그게 제일 크다고 생각함
    여기에 일제강점기 터지고 그나마 
    이 유교 + 성리학이 일제 악습과 맞물려서 
    아예 형체도 못 알아볼 정도로 변질되고.... 
    인식은 더 개판으로...


    제국다운 최후


    이런거 보면 몽골 참 무서운 놈들이긴 하다. 
    어쩌다 그렇게 악에 받힌 느낌으로 
    세계정복하게 된거지


    여진한테 갈굼받으면서 품게 된 독기가 
    둠스택으로 발현되버림


    칭기즈칸이 몽골 초원을 통일하면서, 분열의 
    씨앗이 있었지. 애초에 서로 죽고 죽이던 원수 
    같은 부족이 하나로 통일된거라. 하루아침에 
    몽골족이라고 화목하게 지낼리가 만무했지. 
    내부의 불만을 밖으로 돌릴 수 밖에.
    실제로 칭기즈칸 제위시 금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왔는데 이미 초원부족 하나가 반란을 
    일으켜 버림. 트마트 족이라고 결국 반란진압에 
    사준의 한사람 이었던 보로클이 전사함. 이것만 
    봐도 정복전쟁이 없으면 몽골초원은 내분에 
    휩싸일 지경. 그렇게 정복 전쟁을 계속했는데. 
    문제는 이게 너무 성공적이라 문제. 경제적 이익
    이 너무너무 막대해서 이젠 전쟁을 멈추지 못 할 
    지경. 사람의 욕망이 끝이없었고 전쟁 안 하면 
    몽골 내부에 반란이 일어날 판이라.
    칭기즈칸 말년은 이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다 늙은 칭기즈칸은 전쟁을 멈출수 없다는 
    사실에 한탄해 하며 우울증 증세를 보였음.


    실정이야 있었겠지만 크게 봤을때 아직 망할 때
    가 안 된 통일왕조를 무력으로 망하게 하려니...
    원나라가 말그대로 세계 다 쓸어버렸던 올스타 
    장군에 무기에 병사 끌고왔는데 연단위로 버텼지


    그래도 송이 60년 버틴것만으로도 대단하지
    막강한 경제력...


    저기서 살아남은 병사의 손자가 바로 원나라를 
    멸망시키고 명나라를 건국한 주원장


    정확힌 외손자


    "역대 이래 몸을 던지며 나라에 순국한 자는 
    유독 송 말에 많았다. 패망을 구하진 못 했다고 
    해도, 요컨대 나라가 사대부를 양성한 보람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 
    조익, 이십이사차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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