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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역사에서 마지막으로 요동을 정벌했었던 시기맛난고의 정보 2022. 3. 30. 14:46반응형
고려의 '제1차 요동 정벌' 자체는 1370년에
이루어졌지만 의외로 그에 대한 계획과
준비는 1351년부터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고 있었음.
결국 1370년에 요동 정발에 대한 계획이
최종적으로 수립되었고 이인임을 최고
책임자로 한 고려의 요동 정벌은 진행
되었지.
결국 1370년 11월 4일에 발해가 멸망한지
256년만에 고려는 요동을 재점령하는데
성공하게 되었고, 나당 전쟁 때 신라도 결국
이룩하지 못했던 요동을 고려가 점령하는
성과를 이룩하게 된 거임. 물론 여기까지
보면 요동 정벌에 대한 기세고 분위기고
상당히 좋은 것처럼 보였음.
하지만 막상 요동을 점령하고나니까
고려는 난관에 봉착했는데, 곧이어 겨울이
닥치고나니 요동에 대한 고려 본토의 식량
보급도 여의치가 않았고 그나마 요동에
남아있던 식량도 어이없는 화재에 의해서
모조리 불타버려서 천신만고 끝에 요동을
점령한 고려는 현자 타임이 제대로 씨게
왔음.
결국 이런 허탈하고 어이없는 상황을
경험한 고려는 결국 기껏 점령한
요동에서의 철군을 결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고 힘들게 점령했던 요동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고 요동을 뱉어낸 채
허무하게 물러날 수 밖에 없었지.
당시 이 원정에 참여했던 이성계는 36세의
젊은 무장이었음.반응형
< +추가 댓글 >
요동 제대로 먹었어도 유지를 오래
못했을듯.. 명나라가 하도 강국이라
명나라자체보단 여진족들 통솔하는데
비용을 감당못하지....
요동 친다 비트!!
요동친다하트!
요동친다 하트!
저런 경험이 있었으니깐 요정 정벌을
포기하고 회군한거구나
근데 막상 새 왕조를 개창한 창업 군주가
되고나니까 정도전이 주도한 요동 정벌에
찬성한 것 또한 이성계였다는 것도 재밌는
부분이지.
그것도 있고 이성계가 말한대로 또 왜구가
준동하려고 하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여름에 처들어가는게 너무 어려운 상황
이었음 그래서 겨울에 가자고 설득하는데
죽어도 말을 안처들어먹었고
정확히 말하자면 늦가을, 그러니까 추수가
끝나서 식량 확보를 넉넉히 하고 가자고
했었지. 본인도 1차 요동 정벌에 대한
뼈저린 실패의 경험도 있다 보니까 그렇게
주장했겠지만.
근데 진짜로 왜 그랬을까? 추수만 끝내고
가도 이성계가 그렇게 반대는 안했을건데
우왕은 머저리지만 최영은 이성계 급으로
잔뼈가 굵은 장군인데 이성계가 하는말이
틀린게 하나도 없다는걸 자기도 알건데
팔도를 다 영끌해서 그렇게 서둘러서
보냈을까? 적어도 추수는 하고 가지
요동이 좋은 땅이긴 하지만, 평지고
넓다보니 압록강, 두만강을 끼고 있어서
방어에 유리한 한반도에 비해 방어하기
매우 힘든 지형이지. 군사력이 압도적이지
않다면 유지하기 힘든 곳이긴 함..저기 1370이라고 표기한 베이지색 지역은
구글맵으로 보면 심지어 [21세기 현대]에도
저곳에 도시가 거의 없슴. 그저 그 주변
다른 도시들간에 이어지는 도로만 몇개
나있을뿐, 저 넓은 지역이 텅비어있슴.
저곳은 늪이라든가 울렁울렁한 언덕배기
무한연속이라든가 여하튼 큰 도시같은곳이
생기거나 고대에 대 병력이 진군하기에
지질/지형이 매우 않좋음. 그래서 고구려를
비롯해 옛날에도 제대로 '지역'이 발전하지
못했고, 그나마 좀 다닐만한 통로 몇군데에
성을 지어서 막는 군사거점밖에 하질 못함.
그래서 옛부터 중꿔세력이 만주로
진출하는게 극도로 어려웠슴. 특히나
대병력일수록 더 난이도 높아짐.
오히려 더 북쪽이나 북동쪽의 만주일대
세력이 식량등등 공급을 하며 버티는건
몰라도... 서쪽의 중꿔나 남쪽의 한반도에서
저길 유지하는건 GG반응형'맛난고의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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