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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근간을 뒤흔든 유적 - 괴베클리 테페맛난고의 정보 2022. 1. 4. 17:21반응형
< 괴베클리 테페 >
기원전 9600년에 건축된 걸로 판명남.
이집트 ~ 현대까지 걸린 시간보다
테페사원 ~ 이집트까지 걸린 시간이
수천년이나 훨씬 더 긺.
학자들은 존나 궁금했음.
그도 그럴게 그땐 농사라는 개념이 없어서
죄다 수렵하면서 살았으므로
사람들이 정착해서 한곳에 모여 살 이유가
1도 없던 시기이기 때문임.
근데 돌기둥 하나가 수십톤이 넘어서
제작에는 최소 수백명이 필요했음.
그리고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로
발굴된 것도 이상함.
비교적 최근 유적인 이집트만해도
여기저기 깨지고 무너지고...
근데 땅 파니깐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된
유적이 나온 거임.
보통의 유적지는 세월의 흐름에 서서히 발이
끊기면서 버려지는데...
그렇다고 잊혀진 유적지가 아닌가 하면
완벽하게 잊혀진 유적지가 맞음.
또 하나 놀라운건
돌을 깎아 만들었다는거임.
당시 기술로는 진짜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을텐데
그 작업을 농경사회도 아니고
하나하나 정성들여 했다는 거임.
그러니깐 요약하면
수백명의 인간이
모일 이유가 없는데 모여서
만들 이유가 없는 유적을 만들었고,
보존되었을 이유가 없는데 보존됨.
< +추가 댓글 >
그시대에도 돈ㅈㄹ하는 사람이 있는 갑제
돈이라는것도 농경사회 이후에 잉여생산물
덕에 생겨난 개념이자너
그 '돈ㅈㄹ' 에 쓰이는 '돈' 이 뭐였는가의
문제지.
그 당시에 가치있는건 식량이었을텐데
사람들을 모여살게할정도의 식량을
제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
농경사회 전에?
상상하기 힘들지.
저런 역사와 진화를 파헤쳐야 하는 학문에서
~~해서 그랬는가 보지 하고 사고를 포기하면
그냥 아무것도 못하잖아 ㅋㅋ
그래서 선농경 후정착이 아니라
선정착 후농경 이론이 힘을 얻는다며
정확히는 원래는 선정착하고 그 입을
먹여살리기 위해 후농경이 발달하고
그 이후에 종교가 발달했을 거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는데 저거 이후 농경 기술은
원래 있었으나 정착에 필요성을 못 느낀
사람들이 종교 때문에 모였고 그래서
농경문화가 발달되었다는 설이 나타났지이제 믿겠습니까 휴먼..?
이런거보면 가끔 고대문명 관련 음모론이
진짜 같을 때가 있어
어디서 봤는데 종교가 있으면 불가능도
가능하게 만든다고 하더라
그 당시에도 우리가 모르는 종교가 있었겠지
저것도 종교적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고
첨 본지 몇년이나 지났는데 짤 설명 발전이
없네 정말대단한거면 학자들 달라붙어서
논문쏱아질 때 된거같은데
참고로 테페사원이라고 검색하면 안나옴
괴베클리 테페임
완전히 발굴되고 하려면 앞으로 수십년
걸릴거라던데 아직 너무 단서가 없어서
그런듯
거기가 시리아 근방이라 위험함+터키 정부
에서 굉장히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어서
허가가 없으면 접근불가임
대단한 걸 소개하는 걸 넘어 과장하느라
연도가 틀렸잖아
이집트는 기원전 5천년이라 현대까지는
7천년인데 저기서 이집트까지는 4천년이야.
어떻게 4천년이 7천년보다 길어?반응형'맛난고의 정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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