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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세기 이후 조선 시대 후기에 보였던 대표적인 문제점
    맛난고의 정보 2023. 2. 14.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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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를 들자면, 조선 후기, 즉 18세기 ~ 19세기 
    정도에 와서는 조선시대 관료들의 실무 능력이
    뒤떨어져서 몇 백년 전의 선배 관료들이 남긴 
    업적이나 유산들을 보면서 "햐;;; 선배님들은 
    도대체 이런 실무 능력을 어떻게 보일 수가 
    있었던 거지?"라고 자조하는 모습도 나올 정도
    였음.

    실제로 정조의 치세 때 정조가 신하들을 공부 
    못 한다고 갈궜지? 그런데 실제로 공부를 
    못 해서 면박을 준 의미보다는
    "늬들의 실무 능력이 너무 한심해서 
    못 봐주겠다. 공부 안하냐?" 는 꼽주는 의미에 
    가까웠지.

    정조와 막상막하의 두뇌와 지능을 가지고 
    있었던 세종이 신하들과 경연을 하면서 토론을 
    할 때 신하들을 논리로 박살낸 적은 있어도 
    공부를 하라고 면박을 준 적은 없었음. 
    이걸 비교해볼 때 정조 때에 와서는 관료들의 
    실무 능력이 세종 때는 커녕 선조 떄의 관료들
    보다도 뒤떨어져 있었다는 거임.

    이걸 보면 조선 후기에 와서는 실무보다는 
    유교 경전의 시험에만 몰두하는 성향이 더 
    심해졌다는 걸 알 수 있어.

    그런데 지금도 어떤 의미에서는 기술직이 아닌
    경우는 실무 능력보다 시험 성적이 얼마나 
    좋은지를 가지고 컷트 라인을 정하기 때문에 
    (특히 공무원직)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딱히 저런 부분과 
    다르다고 하기도 뭣하지. 사실 사람이 자신이 
    일하는 업무에 대한 실무를 얼마나 
    잘 파악하느냐가 가장 중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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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레퍼런스가 진리가 되면서 생기는 문제


    내가 듣기론 시험 문제 낼 때 실무에 활용될
    수 있는 주제를 위주로 했다던데 그래도 결국 
    경직성이 늘어난건가


    혹시몰라 이미 18세기 이전부터 문제가 
    있었는데, 영정조 들어오면서 뭔가를 막 하라고 
    하니까 실무능력이 뽀록났을지도...


    ㅇㅇ. 경직성이 늘어나는 거지. 실무 능력이 
    괜히 떨어지기 시작하고 그런 것이 아니거든. 
    세종 때만 봐도 물론 유교 경전 가지고 시험 
    보는 건 똑같았지만 실속이 있는 실무형 관료들
    이 많았다는 것만 봐도 딱 비교가 되잖아.


    조선 초야 신진사대부들이 고려말 혼란기를 
    싸워서 이긴 상황이라 경전 외에 실전으로 
    다져진 만렙 고인물들이 고위직에 포진된 
    시대였고 후임들에게도 노하우가 전수되어서 
    그랬겠지


    거기 더해서 시험부터가 심각하게 문란해져서... 
    임금이 보는 앞에서 줄 딱 맞추고 훔쳐쓰는 놈 
    답안지 미리 가져오는 놈 싹 걸러내 내치던 
    초기 과거시험에서 조선후기쯤 되면 양산 
    뒤집어쓰고 대여섯명이서 답안지 맞춰
    내는데다가 그마저도 앞자리줄로만 커트되는 
    등 실력보단 돈과 연줄로 자리를 꿰차는 시대가 
    되어버렸지...


    저시절 정조가 유일하게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정약용 한 사람 뿐이라고
    칭찬했지 근데 정약용은 당대 죄고의
    천재라서 당연한걸지도


    세상 도움 안되는 유교


    동아시아는 공자 아니었으면 춘추전국시대의 
    혼란이 끝난 이후에도 그 악영향이 지대했을 
    거임
    유교의 탈을 쓴 사기꾼들이 문제였지, 
    공자가 남긴 가르침 자체는 욕할 수 없음


    여기서 유교를 욕하네 ㅋㅋ 
    세종때는 유교아니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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