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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황실의 유일한 양심 - 의친왕 이강
    맛난고의 정보 2021. 9. 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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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바로 독립운동가시기도 했던 
    의친왕 이강이라는 분임.

    이분은 그냥 일제시절에 안주하고 
    그냥 편히 살기를 원했던 다른 형제들과는 
    달랐음.

    그냥 안주하고 친일노선으로 잘먹고 잘살기
    급급한 형제들과 달리, 독립운동가를 만나
    며 손병희와 친한 교우관계도 유지했음.

    의친왕은 당시 수려한 외모와 성격으로 
    큰 인기를 끌었고, 그 탓에 의친왕이 쓰시던
    담배, 의친왕이 쓰시던 차 같은 물건이 
    조선에서 큰 인기를 끌었을 정도였음.

    사실, 원래 의친왕은 승계서열로 따지면 
    순종황제 바로 다음이었는데, 우리 
    프로씹새끼 이완용맨이 얘가 황제됬다가는 
    친일노선이 와해되고 지 입지가 안 좋아질
    수 있다고 판단해서 승계서열에서 밀려나고
    순종이 황태자가 되었음.

    아무튼 이 의친왕은 독립운동가를 위해 
    여러 지원을 아낌없이 넣어줬는데, 그 중 
    하나가 손병희와 상담해서 우이동에 봉황각
    을 세운 것임. 이 봉황각은 바로 3.1운동의 
    발상지기도 함.

    그 이후로도 손병희를 자주 만나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하다가, 더 이상 간접적인 지원
    으로 멈추지 않고 아예 베이징으로 탈출해
    서 직접 독립운동의 최전선에 서려고 마음
    먹고 탈출을 위한 계획을 이것저것 짜게 됨.

    이 때 의친왕의 인기는 진짜 어마어마해서 
    의친왕이 탈출해서 일제 저항의 최전선에 
    선다면 일본으로써는 엄청나게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 이 때 의친왕
    은 "독립되는 우리 나라의 평민이 될지언정
    일본의 황족 되길 원치 않는다" 와 같은 말
    들로 망명 정부를 수립한 후 황족으로써의 
    대우를 버리겠다고 외쳤을 정도로 독립운동
    에 적극적이었는데, 이게 하필 진행 도중 
    일본한테 적발되게 됨.

    일본은 눈에 불을 켜고 사라진 의친왕의 
    행방을 찾았고, 결국 북진해서 만주까지 
    올라간 의친왕은 결국 만주에서 붙잡혀 
    다시 일본으로 송환되게 됨.

    이후 일본은 곧 의친왕을 강제로 자택연금 
    시킨 뒤 의친왕은 3만원 줄테니 잠만 밖에 
    나와라 해서 나갔다가 납치당한 거라는 
    어린애도 안 속을 얼토당토없는 개구라를 
    까면서까지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노력함.

    결국 붙잡혀 잡히게 된 의친왕은 일제의 
    압력 때문인지 자신의 처지에 무력감을 
    느꼈는지는 모르지만 이후 일본의 공작위와
    전 재산을 모두 반납하고 큐슈로 내려가서 
    살게 됨.

    그리고 의친왕은 광복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진짜 자신이 했던 말대로 
    왕정복고는커녕 정치적 성향조차도 
    드러내지 않은 채 평범하게 서울에 살았다
    고 함.

    하지만 문제는 서울에는...




    이분이 이러고 계셨음.

    결국 북한군 손에 서울이 넘어갔고,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딱히 비축해둔 음식도 
    없다보니 피죽도 못먹고 굶고 살면서 몇 번
    이고 그냥 삶을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였다
    고 함.

    이후 70세의 노구로 부산으로 내려가려는 
    등 여러저러 고생을 하시다 결국 5년 뒤인 
    1955년에 별세하셨음.



    +추가 댓글 >

    황족이 다 쓰러기는 아니였나보네


    런승만에게 이분이라니 호칭이 아깝다


    분뇨할때 분


    이승만이 조선왕족 극혐한게 사실 정치적 
    이유나 그런게 아니라 고종한테 고문당했던
    일 때문에 그랬다는 썰도 있음


    TMI
    이승만은 대통령이 되고 난 후 대화할 때 
    "짐은..."이라는 군주의 수사를 즐겨 썼고 
    주변인의 회고록을 보면 은근히 군주 느낌
    을 많이 냈다고 한다.  한반도에 공화정이 
    처음으로 자리잡던 시기이고 국민들 역시 
    생소했던 터라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군주 
    같은 자리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변명을 
    하는 측도 있지만, 사실 수긍하기 어려운 
    변명에 불과한게 이승만은 젊은시절 활동 
    대부분을 대통령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
    에서 활동하고 거주했으며 일제시대 내내 
    활동할 때도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입각한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에서 대통령이나 
    총리 같은 직책을 수행한 사람이다. 
    일반 국민들이 그렇게 본다 하더라도 
    지 스스로 짐은.. 그러면서 왕 흉내를 
    헷갈려서 그럴 일은 절대 없고 스스로 권력
    에 취해서 왕 코스프레를 한 것에 불과하다.
    그리고 일반 국민들부터도 이미 이승만과 
    어울릴만한 정도로 정상적인 지식을 갖춘 
    사람이라면 민주주의와 왕정은 구분할 줄 
    알고 그런 사람이 많으니까 4.19 혁명 같은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다만 이승만의 주변
    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걸 구분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아첨을 하느라 왕 취급 
    했던 것일 뿐... 현대사회에서도 독재정권
    에게 세뇌교육을 당하며 자란 저소득 
    저학력 노인층에게는 아직도 이와 같은 
    인식은 지금도 한국사회에 잔존해 있긴 
    하다.


    요약하자면 암튼 개새기라는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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