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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도 정치 시대를 열어젖히기 시작했다고 평가 받는 김조순의 의외였던 점
    맛난고의 정보 2022. 5. 8.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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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김조순 본인은 굉장히 조심스럽고 
    모나지 않게 살아가려 했던 점에서 의아함을
    품게 만드는 인물인데, 세도 정치 시대를
    열어제낀 점 때문에 부정 축재를 할 것 같은 
    이미지임에도 개인적인 품성 면에서도 
    부정축재 등으로 지탄을 받는 기록이 
    전혀 없었던 사람임.

    그래서 김조순은 관직을 사고 파는 매관매직
    을 하지도 않았고 개인의 처세와 자기 관리에 
    굉장히 신경을 쓸 정도로 청렴한 인물이기도
    했음.

    오히려 김조순은 국왕이 높은 관직을 
    제수하거나 상을 내릴 때도 극구 사양해서 
    받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다고 하고. 그 뿐만
    아니라 과거제의 문란으로 인해 출세길이 
    막힌 젊은 인재를 등용하고, 시궁창스러운 
    상황에 처한 민생을 왕에게 알리는 것에도 
    힘을 썼다고 하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나 당시의 역사서
    에서도 후한 평가를 받았으며, 당장 다른 
    전문인들의 언급을 참고해도
    '그의 혈족과 측근이 권력을 독점하는 
    안동 김씨 세도 정치의 시발점이 된 인물' 
    정도의 언급만 나오고 간신이라는 묘사는 
    없을 정도였으니까.

    오히려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가 본격적인 
    문제점으로 터져버리기 시작한 것은 그의 
    사후부터 벌어진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을 
    정도이고.

    그러나, 김조순 개인으로서는 전혀 문제점이
    없었다고 한들, 조선 왕조를 망하게 만든 
    원인들 중에 하나였던 세도 정치 문제 때문에
    그 시작점이라고 비난 받는 점도 있는 분명히 
    있는 사람이긴 함. 아무튼 그의 품성이나 
    행실이 나쁜 사람이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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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자식 단속 못 했다 엔딩.


    솔직히 말하다면 왕가의 외척쪽은 
    아예 정치를 안하는게 나음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수틀리면 저렇게 
    될수 밖에 없으니까


    옳은 말씀이외다


    죽을때까지 지자식 며느리 친인척까지 
    쓸어버렸으니 그스스로가 왕권제도가 
    잘못 쓰이면 어떻게 되는지 이미 500년전
    부터 예견했던건 아니었을까 싶음 
    결국 그렇게 해서 나라가 망했으니


    저런 경우는 보통 시스템을 
    박살난 경우라 봐야할걸.
    1인 카리스마로 유지되는 나라는 
    무너지기도 쉽지.


    애초에 왕이 정치 손놓은 시점에서 
    시스템은 박살났다 봐야지


    그래서 정조사후에 박살 난 것...


    시스템을 정조가 개박살을 내놨기 때문임
    지가 잘할수 있다고 왕권을 강화해서 
    그럴 능력이 없는 왕이 되면 망하게 
    만든거라고 생각함


    하긴 그리고 정조는 너무 빨리 죽었어


    조선은 근본적으로 강력한 왕권의 확보를 
    위해서 농경이 국가의 근본 산업이고, 
    상업은 강력한 지방 호족의 등장을 막기위해 
    일부러 억누르는 구조였는데, 이게 산업혁명
    이전의 중세 국가에서는 상당히 안정적이고 
    국민들의 빈부격차도 줄여주고 세금 적게 
    걷고도 국가 운영이 되게 하는 등의 강점으로
    작용했지만, 산업혁명기를 맞이해서는 
    산업개화의 발목을 잡는 역할을 했음. 
    그래서 저 세도 정치가 없었어도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개화하고 산업발전시키는 
    엔딩은 없었을 거라고 보지만, 그래도 
    세도정치가 19세기 조선이 쇠락해서 일본에 
    병합되게 만드는 국력 약화의 주범 중 
    하나였던 건 맞음.


    대한제국 말미의 신식군대는 의외로 
    화력이 꽤 있었음
    청나라 군대정도는 훌훌 날려버릴 정도였고
    좀 제대로 된 군주와 시스템으로 개화기를 
    맞았다면 좀 다른 엔딩이 있을 가능성이 
    있긴 했음


    큰 사건이 있고나서 공신들을 숙청하는 
    이유 중 하나지. 당사자들은 아무 탐욕이 
    없다해도 그 사람의 권력과 재산을 물려받아
    강력한 권세를 구축한 후세대가 탐욕이 
    없다는 보장이 없어서.


    아무리 잘났고 충성스럽다해도 신하에게 
    큰 권한을 주는 제도(절도사 등)를 최대한 
    시행 안하려하고 큰 권한을 가진 신하는 
    견제하고 숙청하는 이유가 있음.


    비스마르크처럼 본인이 아니면 관리가 
    안되는 그런 유사한 사례.


    근데 관직 사양했다는 말이 영의정같은 
    관직은 높지만 정작 직접적인 권한 자체는 
    이름값에 비해 큰 의미가 없는 관직들은 
    놔주고 당시 권력의 핵심인 비변사 2인자인 
    비변사 제조(이 시절 비변사는 사실상 
    의정부랑 6조를 제친 조정 그 자체였고 
    1인자인 비변사 도제조는 정승이 겸직하는 
    명예직이였음)는 죽을때까지 들고있던것도 
    사실이긴 함.


    ㅇㅇ. 그래서 만화 조선왕조실록을 쓴 
    박시백 화백은 김조순이 자신의 야욕을 
    겉으로 전혀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숨긴 
    위선자 아니었느냐는 평가도 했을 정도지.


    19세기 체제불안을 알린 신호탄이랄까?


    세도정치도 세도정치만 조선의 산소호흡기
    마저도 뗀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민씨 일가
    라고 생각함.
    이들의 부정부패와 횡포로 간신히 살아있던 
    조선이 완전히 망가져버림.
    일본과 을사오적은 이렇게 사망 직전인 
    조선을 막타쳐서 병탄한 것이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명성황후 미화가 굉장히 
    보기 싫음. 일본인에게 죽은 거 빼면은 
    불쌍하게 볼 가치도 없는 인간인데 일본인
    한테 죽어서 아직도 미화가 되고 있음.
    실제로 명성황후는 딱 행태가 
    조선판 서태후였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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