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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 중국을 조졌던 또 하나의 마약, 오석산
    맛난고의 정보 2022. 3. 6.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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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히 중국, 마.약 이 두 키워드를 가지고 
    떠오르는 거 있냐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아편을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근대 중국에서 아편이 끼친 해악은 
    장난이 아니었고, 덕분에 지금의 공산당은 
    뒷돈만 안 바친다면 마.약에 관련해서는 
    이유불문 없이 사형을 내릴 정도로 
    강경하게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으니.

    하지만 중국하면 대표적인 마.약은 아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찌보면 아편
    보다 더 큰 해악을 끼쳤던 마.약이 청나라 
    이전에, 그것도 무려 1500년도 전에 
    있었으니




    그게 바로 지금 이 글에서 얘기하려는 
    오석산(五石散)이다.

    재료로 다섯가지 광물을 필요로 한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오석산은 그 역사가 
    대마나 아편 따위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긴데

    송나라도 당나라도 아니고 무려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후한서(...)에 그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할 정도다. 당연히 여기서도 
    악명은 엄청났는지 사람 잡는 약으로 
    나온다.

    그도 그럴게, 저 위에도 나오는 오석산의 
    재료를 하나하나 살펴보면

    석유황(石硫黃) - 삼황화비소(...)를 
    주성분으로 하는 광물

    석종유(石鍾乳) - 석회동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종유석. 쉽게 말해 탄산칼슘 덩어리

    자석영(紫石英) - 자수정. 그 보석 자수정 
    맞다(...)

    적석지(赤石脂) - 주 성분이 규산알루미늄
    인 황토

    백석영(白石英) - 백수정, 이산화규소가 
    주 성분

    이미 맨 처음의 비료가 당당히 비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뭔가 불안함을 
    느꼈겠지만, 당대의 사람들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했는지 무려 여기에다가 
    수은(!)을 섞었다. 뭐 수은이야 진시황도 
    퍼마셨다고 하지만 그때의 수은하고 
    지금의 수은하고 다를 것도 없는 노릇이고




    아무튼 이 말 많고 탈 많은 오석산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전설의 위진남북조 시대, 정확히는 
    삼국지가 끝나고 서진이 등장한 이후 
    부터였다.

    초대 황제 사마염부터 시작된 막장 정치와 
    구품관인제로 인해 황제조차 무시할 수 
    없는 빽과 권세를 쌓은 귀족들의 사치와 
    혼란으로 나라는 건립한지 10년도 안 되서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특히 서진 시대의 귀족들의 사치는 청말 
    서태후조차 검소하게 보일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자랑했다. 사람 젖을 키워먹은 
    돼지를 겨드랑이살만 먹고 나머지는 
    버렸다던가, 승상이나 되는 양반이 하루에
    1만전을 들여서 밥을 처먹었는데도 먹을 
    게 없어서 징징댔다던가 하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 중에서 제일 압권인건 왕개와 석숭의 
    전설의 돈지랄 경쟁이지만 이건 너무 
    길어지니 다음에 써보도록 하겠다.

    아무튼 이런 지배층의 정신나간 사치가 
    날마다 이어지는 게 서진의 일상이었는데, 
    이런 사치를 부릴만한 돈은 당연히 어디서 
    나왔겠는가? 당연히 밑의 백성들을 
    착취해서 얻어낸 거다.




    이러는 와중에 이 개념상실하신 서진의 
    윗대가리들은 기어코 오석산까지 손을 
    대게 된다.

    현실에서도 부자들이 마.약파티하다가 
    걸리는 상황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이때는 몰래 하긴 커녕 승상이라는 
    자가 대놓고(...) 오석산을 한다고 자랑할 
    정도로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기록에 의하면 주로 덩어리 상태의 
    오석산을 가루로 내여 술에 타 마시거나 
    그대로 흡입하는 식이었는데, 마.약 
    아니랄까봐 이런 식으로 섭취할 경우 
    기분이 상쾌해짐과 동시에 몸이 공중에 
    붕 뜨는 기분이 들면서 모든 세상의 
    속박에서 해방된 기분이 든다는 
    느낌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피부가 어린 여자처럼 
    탱탱해진다고 하는 기록도 있는데, 
    이건 재료 중 하나인 수은의 부작용으로 
    보인다. 당연히 저럴 정도로 수은을 
    쳐마셨다면 지금쯤 차사님이 출장대기 
    중이라는 소리고




    이 오석산이 그냥 몇몇 부패한 윗대가리들
    의 개인적 쾌락에만 그쳤다면 모르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애초에 마.약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시대인 만큼 오석산은 
    신분여하를 막론하고 귀하고 독특한 약 
    취급을 받았으며, 서진의 윗대가리들이 
    남용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부의 상징으로 
    취급받기도 했다.

    심지어 이 사태를 누구보다 앞장서서 
    비판하고 담론해야 할 당시의 유학자들
    이나 현인들 조차 머리를 맑게 해준다는 
    이유로 오석산을 하는 경우도 매우 흔했다. 
    우리가 잘 아는 죽림칠현들조차 오석산을 
    빨고 담론했다는 기록까지 있을 정도니.

    특히 이 당시의 유학은 도가 사상과 결합된
    청담사상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당연히 
    서진의 개막장 상황을 거치면서 
    이 청담사상 역시 
    공담(空談, 헛소리나 한다는 뜻)이라는 소리
    로 불릴 정도로 타락해버렸고, 기존의 
    유가적 현실참여 성향보다는 도가적 
    신선사상이 더 강조되면서 먹으면 
    속세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준다는 
    오석산의 가치는 올라가면 올라갔지 
    내려가지를 않았다.

    각종 유명인사들조차 오석산 중독에는 
    예외가 있을리가 없어서, 심지어 남북조
    시대의 명필 왕희지조차 말년엔 오석산에 
    미쳐서 오석산 재료를 캐러 산을 
    돌아다녔을 정도였다.

    여기서 최강 케이스를 뽑자면 다름아닌 
    북위의 태조 도무제 탁발규였는데, 무려 
    황제라는 작자가 말년에 오석산을 빨다 
    미쳐버려서 신하들을 마구잡이로 죽이다가
    아들내미 탁발소에게 끔살당했다는 
    기록이 당당히 남아있을 정도다.




    당연히 현실의 마.약중독 역시 그 끝이 
    비참하듯이 오석산 중독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장 위에서 언급된 재료들을 봐도 먹으면 
    죽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금속 덩어리라 
    실제로 먹고 죽는 사람들까지 생길 정도
    였고

    당장 죽지는 않아도 중독으로 인해 피부가 
    까끌까끌해지고 약해져 옷을 제대로 입지 
    못 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 해 이가 들끊는 
    부작용까지 생기는 등 중금속 중독에 
    고통 받으며 천천히 죽어갔다.

    당장 위에 언급된 왕희지의 아들이자 
    마찬가지로 명필로 이름을 날린 왕헌지
    조차 결국 오석산 중독으로 인해 등이 
    썩어서 죽는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을 
    정도였으니 나머지 사람들의 최후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현대의학에서도 
    중금속 중독의 치료는 엄청나게 골치아픈 
    일 중 하나인데 당시에 치료를 할 수가 
    있었을리가

    복용한 후에도 한식산(寒食散)이라고 하여 
    뜨거운 물이나 음식을 먹으면 죽으니 
    반드시 차가운 걸 마셔야 한다고 했으며
    (당시의 음양설에 기반한 설명이긴 하지만, 
    현대의학의 관점으로 봐도 체온이 
    높아지면 중독으로 인한 독성이 빨리 
    퍼지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함)

    그 외에도 행산(行山)이라고 하여 반드시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산을 뛰어다니며 
    독기를 빼야 한다고 했는데, 하필이면 
    오석산의 각성제 효과가 남아있는 상황
    에서 이러다 보니 얌전히 산을 돌아다니기
    는 커녕 시장통에서 온갖 기행을 저지르는 
    중독자들도 많았다고 한다.




    당연히 당대의 한의사들 역시 오석산이 
    뭔가 이상하다는 점은 알고 있어서 수 없이
    경고를 날렸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황제마저 오석산을 빨아대는 상황에 
    당시에도 비천한 취급 받던 의사들의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결국 이 오석산은 안 그래도 막장이었던 
    서진의 정국을 악화시켜 영가의 난에 
    일조했다는 크나큰 업적을 남기며(...) 
    역사에 그 한 획을 그었고

    무려 북송시대에까지 악명을 떨치다가
    (사실 당나라때 없어질 뻔했는데 다른 사람
    도 아니고 소동파가 이걸 극찬하는 
    바람에....) 가까스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현대에는 
    제조법이 실전되어 버리는 바람에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 정도일까

    참고로 마지막 짤은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우리나라 공주 공산성(...)에서 발굴된 
    오석산 관련 기록과 유물이다. 이 빌어먹을 
    마.약은 무려 백제를 비롯한 삼국시대
    에서도 악명을 떨쳤다는 소리다. 참으로 
    뿅뿅 관련해서는 대단하기 짝이 없는 
    대륙의 스케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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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황제가 약쟁이라니 ㅅㅂ....


    시황제도 수은먹고 했는데 뭘. 
    유구한 전통이었다


    이게
    근마 그거 
    하진의 손자 하안이 즐겼다는 그거 아닌가 
    피부 주름 없어지고 하얘지는데 
    피부가 죶나 약해져서 꽉 끼는 옷 못 입고 
    다녀서 
    맨날 하늘 하늘한 옷 입고 다녔다는거


    맞음.
    진성 삼빠들은 하안때문에 
    오석산 알게된 경우 많음


    참고로 저 행산 관련해서는 재미있는 
    기록이 하나 있는데
    당시엔 오석산을 빨고 행산을 하는 게 
    부의 상징으로 통해서 오석산 살 돈이 
    없는 평민들은 오석산을 빨지 않았는데도 
    일부러 헐렁한 옷을 입고 산을 
    돌아다니면서 행산 하는 척을 하는게 
    유행이었다고 함


    우리나라도 지금 높은분들의 향락을 위한 
    물건이니까 돈있고 빽있는데 안할거야?


    왕희지라면 중국 역사 전체를 훑어봐도 
    명필 소리 들을 정도 양반인데 그 양반조차
    뿅뿅중독이었다고? 아니 ㅅㅂ 그걸 
    쳐먹고도 58년을 살았다는 게 더 신기하네..


    왕희지 아들이래


    성분만 보면 뿅뿅이 아니라 
    그냥 독약같은데


    저 때 인식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뿅뿅 
    같은게 아니라 정신 수양을 위한 
    약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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