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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추측만증으로 유명했던 인물 - 리처드 3세
    맛난고의 정보 2024. 8. 19.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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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로서 맹장이라 불리며 장미 전쟁 당시 
    요크 가문을 이끌었던 잉글랜드 왕국의 
    리처드 3세

    그는 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치세에도 군사적 
    치적을 쌓으며 용감한 지휘관으로서 활약했던 
    리처드 3세에게는 자타공인 모르는 사람이 
    없었던 사실이 있었으니 그건 존나게 심한 
    척추측만증 환자였다는 것

    훗날 장미전쟁 막바지 후퇴과정에서 적의 공격
    을 받고 홀로 고립된 채 몰려드는 핸리 튜더의 
    군대에 맞서 싸우다 전사한 이후 그의 시신은 
    런던의 그레이 수도원에 안치 되었는데

    훗날 그의 유골이 시간이 지나면서 유실되었다
    가 어찌어찌 유골 발굴을 통해 2012년 DNA 
    검사를 통해 그의 유골을 다시 되찾아 조각조각
    나뉘어진 그의 뼛조각을 맞춘 결과...



    (실제 리처드 3세의 척추뼈의 정면 모습)

    실제로 그의 척추가 심할 정도로 뒤틀려있다는
    것이 밝혀짐.

    지금까지 각도가 심하게 틀어진 척추측만증 
    환자들은 허리 장애와 통증으로 전투는 커녕 
    일상생활도 불가능했을거라 여겨졌지만 
    리처드 3세와 비슷한 수준의 척추만증을 앓고 
    있는 도미닉 스미라는 남자를 통해 과격한 운동
    도 가능하다는 것도 알아냄.

    도미닉 스미는 실제 중세 기사처럼 온 몸에 
    판금 갑옷을 입고 보스워크 전투를 재연했는데
    곧잘 움직이며 검을 휘두르는데에 어려움도 
    없었음.



    (당시 기사들의 모습을 재연한 판금 갑옷을 
    착용한 도미닉 스미)

    충분한 근력과 전투기술만 있다면 비장애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고, 무엇보다도 중세시대의 
    말 안장의 효율성에 연구진들은 큰 충격을 받음.

    일반인들은 불편함만 느끼는 중세시대의 기술로 
    만들어진 말 안장을 도미닉 스미를 비롯한 척추
    측만증 환자들은 현대의 말 안장보다 더 큰 
    편안함을 느꼇다는 결과가 도출됨.

    일반인에 불과한 도미닉 스미가 척추 측만증 
    환자의 불편함을 교정해주는 중세 말 안장을 
    끼고 전투를 하는데에도 능숙한데

    평생을 전장에서 살았던 리처드 3세였다면 
    기술, 근력, 경험 삼박자를 갖췄으니 지금까지의
    편견과 달리 어떻게 그렇게 많은 활약을 했는지
    가 설명이 되기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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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사실 척추 측만증은 앉은 자세보다 유전적 요인
    이 더 크다


    놀랍게도 척추측만증의 원인은 아직 밝혀진 게
    없다.


    하지만 안하는거보단 낫겠지 하는 심정으로 
    잠시나마 고쳐 앉는다




    앜!척추교정전문의선생님감사합니다!


    측만은 몰라도 디스크라도 예방해야지


    이게 가장 중요함 ㅎㅎ


    갑옷이 일종의 교정기 역할도 했었다는건가


    기마전은 능했는데 내리면 못싸웠다는 추측도 
    있었던 걸로...


    실제로도 당시의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기록들을 
    보면 분병 장애가 있었지만 일신의 무력도 매우
    뛰어난 기사인 것은 맞다고 함


    활약 (수양대군 엔딩을 꿈꾸다 반란당함)


    듣기론 말에서 떨어져서 
    그대로 병사들한테 맞아죽었다고 하던데
    하마했을땐 전투를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실제로 유골을 연구한 결과 온 몸이 단검과 
    할버드 등 무기에 찍힌 상흔 투성이었다고 함


    이분 후손이 닥터 스트레인지라는데


    그리고 리처드 3세의 먼 후손이 
    바로 베네딕트 컴버배치다.


    큰일이다 잘생김이 또 녹아내렸어




    이거 슈카월드에서 썰 풀어주는거 봤는데 
    재밌더만 이 사람 유골 발견한거 때문에
    영국 왕조 DNA검사가 가능해졌다고


    하지만 셰익스피어 때문에 리차드 3세는
    꼽추라고 자신을 비웃는 사람들의 무시와 
    조롱에 흑화해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왕위에 올라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대명사가 되어버림


    이거 생각보다 재밋음


    오늘의 교훈:허리 안 좋으면 근육을 키워라


    우사인 볼트가 아니네...


    여담으로 리처드 3세의 유골을 발굴 하고
    장례식 까지 치러준
    레스터시의 축구팀
    레스터  시티 FC는
    당시 리그  최하위 였는데 
    리처드 3세의 장례식 이후 
    7승 1무 1패라는 말도 안 되는 성적을 올려서
    승격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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