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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봉 정도전에 대한 의견이 아직도 분분한 부분
    맛난고의 정보 2023. 5. 2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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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은 정말로 요동 정벌을 실행하려고 
    했을까? 아니면 명나라에 대한 단순한 불러핑 
    용도에 지나지 않았을까?' 하는 부분임.

    아무튼 정도전이 주장한 요동 정벌에 대하서
    정작 '4불가론'까지 들고 나올 정도로 최영 앞
    에서 요동 정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고 
    말했던 이성계가 정도전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이지. 사실 정도전 권력의
    기반은 이성계의 비호 아래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물론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실행하기도 전에
    이방원의 손에 의해 척살이 되고 이방원도 
    정도전에 대한 척살 명분 중에 하나로 내세운
    것도 요동 정벌 반대를 근거로 내세운 것이었
    으니까. 요동 정벌에 대한 실행 가능성이 있는
    지는 차치하고서라도.

    정도전이 의흥삼군부를 설치하고 사병 혁파
    를 주장하면서 요동을 정벌할 군사들을 모은
    것 자체가 진짜로 요동 정벌을 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인지, 자신을 압박하는 명나라에 
    대한 블러핑으로 쓸 무력 시위용이었는지는 
    지금까지도 사학계에서 의견이 분분하지.

    그래서 여말선초 시기를 다룬 사극들에서도 
    정도전이 주도한 요동 정벌에 대한 해석과 
    시각이 제각기 다른 것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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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가 댓글 >

    그만한 사이즈의 정책이 순수하게 블러핑 
    목적만으로 진행이 가능할까?


    정도전만의 블러핑이 아니라, 철령이북의 
    영토를 요구하는 명나라에 대한 조선의 
    블러핑이기도 했으면 가능하긴 하지.


    블러핑이라도 저런걸 시행할 여력이 있었던 
    초기 조선군 ㄷㄷᆢ


    초기 명군이 혼란이기도 했음
    실제 무력적으로 1차 요동정벌은 성공해서..


    전적으로 명나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
    있었다고 봄. 막상 산해관 너머로는 총관들이
    나 찔끔찔끔 보냈던거 생각하면 요동반도만 
    먹었다면 내버려뒀을 가능성도 있긴 했을 것 
    같은데


    하긴 북원 건재한 상황에서 조기진압은 
    어려울 수도 있을텐데


    찾아보니 북원 1388년에 망해서 저 때는 
    없는 나라임. 조선 건국이 1392년.


    몽골 제국 자체는 존속했을껄
    다얀칸 시대 지도보면 거의 요나라 수준으로
    넓어졌더마


    다얀칸 아버지가 외몽골을 통일했는데, 
    그 통일 전에는 명나라에서 임명하는 
    태사회왕이었음. 그 이전에는 그냥 명나라 
    영향권이었음.


    사병도 처리할겸 살짝만 건드리려한게
    아니었을지


    상황 봐가면서 포석 두는 느낌으로 한거라 
    그 시점애서도 모호한 형태로나마 대계로 
    잡아둔게 아닌가 싶기도 함


    요동 정벌을 명분으로 사병을 관군으로 
    흡수할려고 했다는 카더라도 있던데


    정도전 드라마에선 블러핑에 가까운 해석이
    고 육룡은 진짜로 치려했다고 나오긴 하더라


    근데 만약 저게 블러핑이 아니고 1차때처럼 
    요동 반도를 실제로 먹었다 가정해도
    동북 9성 엔딩 못피했을꺼라 생각함
    당장 쥐꼬리만한 동북 9성도 감당 못했는데
    요동 반도에 알박기를 어떻게...
    심지어 본토도 개박살 났는데


    동북9성은 고려가 엘리전걸고 시작한거지만
    저때 태조는 주적이 될 여진족들의 슈퍼스타
    였으니 좀 달랐을 수도


    이성계가 요동쪽 군벌이라서 그런듯
    고려시절에야 자기 세력 다 작살날 위기니 
    위화도 회군을 한거고 조선시절은 여차하면 
    세력을 옮겨버리면 되니 명나라랑 한판 해볼
    만하다고 판단해서 정도전을 정책에 찬성한
    거지


    훨씬 안정기인 세종때 4군6진도 유지하느라
    꽤 애먹었던걸 생각하면 블러핑 같다는 생각
    이 드네. 후대의 북벌처럼 내부단속의 의미도
    있고 (사병 내놔) 외교카드로도 쓰고


    뺏어온 사병들 어치피 편입해도 말도 안 들을
    거 그냥 요동에 어택땅찍어서 갈아버리려 
    그랬던거걸지도


    요동을 지배한다고 생각하면 이해 안 갈거지
    만 요동 일대를.흔들어서 압박을.주는 작전이
    라면 충분히 할.만한 작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요동이 여러 민적이 혼재한 땅이니깐


    조선 초면 고려 말보다 훨씬 안정되서 쳐서 
    점령할 정도의 군세는 되었음.
    당장 명에서 파악하기론 여진과 합세해서 
    20만명의 군사력을 동원가능하다고 보고 
    있었으니... 문제는 그 후 유지하는거지.
    보급부터해서 요동땅을 안정화시키기 전까지
    는 돈이 엄청 깨질텐데 그걸 감당할 수 있었
    으려나.


    고려때랑은 상황이 완전 틀렸음
    최영시절은 국운이 쇠한데다 시기도 좋지 
    못 하고 식량사정도 좋지 못 했음
    그 좋지 못하다는 판단이 단순히 이성계의 
    단독판단이 아니라 이인임 라인이었던 
    조민수까지도 동조를 했다는점에서 얼마나 
    상황이 심각했는지를 보여줌
    반대로 조선초기는 나라의 기틀을 세움과 
    동시에 안정화에 성공한 시기였고 강력한 
    초기 왕권이 유지되는 시기였음
    태조 이성계 자체가 가장 크고 강한 사병들을
    거느렸었기에 국가에 편입시킨다고 액션을 
    취하면 그 누구도 반항도 못하고 뺏길 판이었
    고, 실제로도 그렇게 됬음. 정도전라인이 끊임
    없는 구설수에도 현대까지 인정받는 건 그 
    정치나 행정능력들이 뛰어나서였고, 전쟁에 
    필요한 물자와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들을 
    모아 훈련했다는 건 사병혁파와 동시에 충분
    히 요동도 칠만한 근거가 됬다는 소리이기도
    함. 육룡을 보면 무명쪽에서 명이 이미 정국을 
    수습하고 조선을 박살내네 머네 하는데 그건
    엄연히 미래를 알고 있는 우리들의 시점에서
    나 가능한 이야기고, 저시기의 정보는 결국 
    직접 보고 듣고 파발이나 편지를 띄워야 가능
    한 시기인데 유자의 나라 운운하던 정도전과
    전쟁이라면 이골이 났고 실제로 요동을 먹고
    도 다시 헌납했던 이성계가 그각을 봤다는 건 
    그 시기엔 충분히 먹고 굳힐 각이 보였다는 
    소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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