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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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심왕 리처드 1세의 최후맛난고의 정보 2023. 3. 27. 21:46
1199년 3월 리처드 1세는 리모주에서 리모주 자작 아이마르 5세의 반란을 진압하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샬루-샤브롤(Châlus-Chabrol) 이라는 손바닥만한 성의 성벽 주위를 확인하다가 난데없이 날아온 크로스보우의 볼트에 왼 어깨를 맞았음. 당장 죽지는 않았으나 상처는 계속 곪았고 이내 리처드 1세는 오늘 내일하게 됨. 그래도 어쨌건 성을 함락하는데 성공은 함. 성을 점령한 리처드 1세는 자신을 쏜 병사를 데려오라고 명령했음. 이 병사의 이름은 기록에 따라 피에르, 존, 베르트랑 등등 천차만별임. 여하튼 리처드 1세가 왜 자신을 쐈냐고 물어보자 리처드 1세가 자신의 아버지와 두 형제들을 죽였으니 복수했다고 대답했다 함. 원래라면 가족들 곁으로 보내줘야 했으나 리처드 1세는 뭔가 느낀 바가 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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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1세가 용장으로만 불리는 것이 저평가인 이유맛난고의 정보 2023. 1. 19. 22:32
리처드 1세가 3차 십자군 전쟁에서 보여준 용맹함과 무용담은 꽤나 유명하고 무력도 엄청난 굇수 수준이라서 리처드 1세를 용장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지장과 명장으로서의 면모도 큰 인물이었음. 왜냐하면 전장에서의 전세가 워낙에 급박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기본적으로 신중한 사람이었기 때문임. 실제로 리처드 1세는 키프로스에서 배를 타고 보급 물자를 실어오는 해안 부대의 보급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해안가를 따라서 병력을 이동시킬 정도로 당대에 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도 강조했던 인물이었음. 그래서 그가 결국 예루살렘 탈환에 실패한 이유 도 그의 신중한 성격 때문이었고. 그래서 리처드 1세는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목표 는 결국 실패했지만, 해안가에서 보급을 끼고 조심스럽게 해안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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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관련해선 무능했는데도 평가가 나쁘지 않은 왕 - 리처드 1세맛난고의 정보 2022. 2. 15. 14:49
흔히 제3차 십자군 전쟁 때의 무쌍난무로 인해 희대의 패왕 이미지가 붙었지만 정작 역사기록을 보면 왕으로서 제일 중요했던 정치적 능력은 심각하게 부족했음.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처드 1세의 정치적 능력에 대한 평가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데 하필이면 그 다음이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영국 역사상 최악의 왕이라 꼽히는 존 왕이었던지라 졸지에 정치력이 부족해도 존보단 나았던 리처드가 반사이익을 보게 됨... 왠만하면 별칭에 안좋은말 안쓰는데 실지왕 칭호받은놈 리처드는 적어도 땅을 잃진 않았지 저새낀 프랑스 땅을 다 말아먹었다구요 엄마가 지참금으로 가져온 땅까지 날려먹은 불꽃효자 그래도 쌈질은 잘 했던 왕 뭐 했는지도 모르겠는 왕 정치적으론 존나 암군이였으나 암튼 존나 쌤! 존나 기사같음! 으로 존나 십자군..